국제전기통신연합 통신부문(ITU-T) 연구반 17(정보보호) 회의가 2012년 2월 20일부터 3월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어린이는 인터넷상에서 여러 폭력물과 음란물 등 유해 콘텐츠 등에 심각히 노출되어 있고, 이러한 노출로부터 어린이 또는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나라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의 법제도적 대책과 더불어 기술적 대책의 마련이 선결되어야 하며, 이는 서비스 제공자, 부모, 어린이 등 주요 주체, 그리고 정부의 공동 노력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한편, 이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해 국제전기통신연합(이사회, 글로벌 사이버보안 어젠다 중), OECD 등의 다양한 국제기구에 의해 이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이번 연구반 17 회의 기간 중 가장 뜨거웠던 주제 중 하나는 연구반 17이 온라인상에서 어린이를 보호(COP, child online protection)하기 위한 기술적 표준을 개발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토론이었다. 본 고에서는 이 이슈에 대한 논쟁사항과 합의 사항을 중심으로 기술하며, 더불어 향후 전망과 우리의 대응자세를 차례대로 서술한다.

주요 이슈 및 논쟁사항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들은 온라인상에서 포르노그래피, 폭력물, 불건전 정보 노출 등 다양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온라인상의 어린이 보호를 위해서는 기술적 보안 수단뿐만 아니라 이를 막기 위한 법제도의 개선과 참여자(서비스 제공자, 부모, 정부, 어린이 등)의 인식제고가 요구된다. 이번 연구반 17 회의에서는 온라인상에서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연구반 17이 기술적 표준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 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이 이슈의 시작은 2011년 2월 정보통신표준자문그룹(TSAG) 회의부터였다. 2011년 TSAG 회의에서 ITU-T 정보통신국(TSB)은 온라인상의 어린이 보호를 위해 연구반 17이 기술적 표준을 개발할 것을 고려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TSAG 회의는 연구반 17에게 아이덴티티(identity) 관리 문제를 포함한 여러 기술 표준을 개발할 것을 검토하라고 요청했다.

2011년 4월 연구반 17 회의에서는 TSAG 회의 결과가 접수되어 연구반 17에서 이 이슈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4월 연구반 17 회의에서 러시아는 COP 표준 개발을 위해서는 다른 표준화 기관에서 수행된 표준화 및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연구반 17이 추진해야 할 주요 표준화 항목을 찾자고 주장했다. 캐나다, 영국 등은 회의에서 대체적으로 기존 타 기구에서 수행한 결과를 살펴보고 중복되지 않은 기술적 표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기술 표준을 개발하는데 에는 아주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토론 결과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이사회 산하 온라인상 어린이보호 작업반에게 연락문서를 보내고, 기존 타 표준화 기구 및 관련 기구에 의해 수행된 연구결과를 살펴보기 위한 전문가그룹(Correspondence Group on child online protection)의 신설을 합의했다.

2011년 8월 연구반 17 회의에서는 CG 결과가 발표되었으나, CG에서 수집된 정보가 불충분하다는 의견이 개진되어 CG 활동을 한 번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연구반 17 회의에서는 두 번의 특별 세션(의장 : 나재훈, ETRI)이 열렸다. 지난 6개월 남짓의 CG 활동 결과를 보고받고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술 표준 개발에 반대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과 기술 표준 개발에 적극 찬성하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진영 간에 현격한 의견 차이를 다시 확인했다.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은 많은 기술 규격이 W3C(World Wide Web Consortium) 등에서 이미 개발되었으며 2010년 ITU 전권위원회 결의 130 에서 ITU-T는 콘텐츠를 다루지 말 것을 요청하는 조항을 들어 연구반 17에서 어떤 표준도 개발하지 말고, 국가 단위 별로 기존 W3C 등에서 개발된 표준을 이용해 각 국가별로 온라인 어린이 보호를 위한 능력을 향상해야 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W3C 등은 ITU-T 회원이 참여가 어렵고 현재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추가적인 기술 표준 개발이 필요성의 반증이며, 개도국 회원들에게 기술표준을 제공해야 하며 관련 연구과제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열띤 논의의 타협점으로 영국 등이 온라인 어린이 보호를 위한 JCA(Joint Coordination Activity) 신설을 제안했다. 한국은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에서 밤 10시 이후 청소년이 게임을 이용할 수 없게 하는 셧다운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JCA 신설에 기본적으로 찬성했다. 또한, COP 관련 전문가를 모일 수 있고 구체적인 산출물이 기대할 수 있는 FG(Focus Group)의 신설을 고려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이 JCA 신설을 선호해 JCA를 신설하키로 하고, ToR(Terms of Reference)를 만들고, JCA 신설 절차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활동을 주도할 의장이 결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연구반 17 총회에서 연구반 17 회의 종료 후 각 회원국에 의장 후보를 추천하도록 요청하는 전자 통보를 보내서 각 회원국에게 의장 후보를 추천하게 하고, 10일이 지나도 추천이 없으면 연구반 17 의장단이 의장을 선임하도록 결정했다. 이 결정에 근거해 각 회원국에 3월 16일까지 의장 후보를 추천 요청하는 전자적 통보가 이뤄졌고, 미국은 3월 14일 Ms. Ashley Heineman을 JCA-COP 의장 후보로 추천한 바 있으며, 4월 27일까지 국가별 의견을 수렴이 완료되어 의장으로 결정되었다.

향후 추진 전망

이번 회의를 통해 신설된 온라인상의 어린이 보호를 위한 JCA 신설 절차 합의는 연구반 17이 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국제 표준을 개발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ITU-T가 어떤 국제 표준화 활동을 수행하는 것 자체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연구반 17이 가까운 장래에 기술적 표준을 개발하는 것까지 진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다시 말해, JCA 신설을 위한 절차 시작이 본격적으로 표준 개발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 아니라, 유관 SDO(Standardization Development Organization)나 국제기구들 간에 활동 조정 역할만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적 표준 측면에서, 이러한 조정 역할은 국제전기통신연합이 COP를 위한 실질적인 표준 활동을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입장에서는 관찰자 입장에서 JCA 활동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