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기통신연합 전기통신 표준화 부문(ITU-T)의 SG5(Study Group 5) 산하에 2009년 5월에 새로운 표준작업그룹(Working Party)이 신설되어, ICT 장비로 인한 기후변화와 관련된 표준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 WP 산하에 5개의 표준연구반(Question Groups)이 조직되었고, 정보통신 분야에 촛점을 맞춰왔던 ITU-T의 기존의 방향과는 달리 이 표준작업 그룹에서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광범위한 ICT 분야의 환경 영향 평가 방법론에 대한 표준을 주축으로, 데이터 센터의 직류 전원 공급을 위한 표준, 케이블 등을 비롯하여 ICT 제품의 리사이클링을 위한 표준, e-Waste를 줄이기 위한 범용 표준 충전단자 등이 개발, 또는 개발 중이다. 

이 표준작업 그룹의 회의는 2009년 신설 이래, 가장 뜨거운 이슈인 기후변화 관련 표준화가 이루어지는 기구로서 매 회의마다 항상 긴박한 표준화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는 크게는 기후변화 대응에 앞서 있는 서유럽 국가들의 기술 및 관련 기술 정책을 ITU-T를 통하여 국제 표준화로 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미국이나 한국같이 전반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국가적 대응을 하고 있으나 특정 이슈들에 한해서는 산업계의 진화 속도를 고려하여 이러한 강력한 압력에 대응하는 움직임, 기후변화 이슈가 자칫 경제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개도국의 움직임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11월 ITU-T 회의에서는 주요 3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지난 3월에 표준으로 승인된 범용 충전 솔루션 표준의 개정 논의, 또한 이 작업의 2단계 초안 논의, 중국이 새롭게 제안한 모바일 기기를 위한 범용 배터리 표준 항목 제안이 그것이다.

특히 이슈가 되었던 이 3가지 작업은 SG 5 산하에서 ICT 장비와 설비에 대한 환경 보호와 리사이클을 담당하는 표준연구반 21(Q21/5)에서 다루어졌으며, 기존의 ITU-T의 표준 범위가 아닌 분야가 기후변화라는 흐름을 타고, ITU-T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로 떠올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3가지 이슈들은 아주 첨예한 대립을 세우며 회의 내내 추가로 임시(ad-hoc) 회의가 계속 생성되어 논의가 되는 등 긴 시간 동안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각자의 입장을 좁히기가 어려웠다. 특히, L.1000 (범용충전단자 표준)의 개정 부분은 ‘정보통신기술이니셔티브(GeSI)’의 제안으로 ITU-T의 기술표준화국(Telecommunication Standard Bureau)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단순한 전달문서(Liaison Statement)로 제안된 내용을 현지에서 문서작업을 통하여 이를 컨센트까지 가려는 시도를 하는 등, 전례없는 표준 개발 절차를 도입하여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 이슈가 모바일 산업에서 앞서가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삼성, LG등)의 입장에서 우려가 있음이 회의 직전에 전달되고, 현지에 관련 기술 전문가가 없는 상태에서 이에 대한 국가적 대응을 해야 하는 치열한 상황에 놓였다.

해당 이슈는 iPhone을 제조하는 미국의 애플사, 전세계 휴대폰 제조 1,2위 업체인 노키아와 삼성과 같은 거대 산업체 및 자국의 관련 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 정부 및 한국 정부가 제안된 내용을 강력하게 저지하였다. 통상, 이렇게 2개 이상의 멤버가 반대하는 경우는 해당 회의에서는 안건이 동의되지 않아 다음 회의에서 추가 기고서를 토대로 다루어지는 것이 통례인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TSB 국장의 지시와 SG5 의장의 강력한 압력으로 추가 회의가 생성되어 끊임없이 타협안 협상을 요구받았다. 우리나라의 국가대표단으로 참석한 TTA의 ITU-T 담당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진행은 ITU-T의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U-T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어가며, 윗선에서 강력한 압력을 Question 회의에 내리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뜨거운 감자에 대한 타 표준개발 기구와의 주도권 싸움 및 UN 및 EC(European Commission)와 같은 기관이 예의 주시하는 기후변화 관련 ITU-T에서의 표준화 선점에 대한 홍보 효과에 대한 기대치가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이러한 틈새에서 자국의 저가의 배터리 시장을 넓히기 위하여 e-waste를 줄인다는 포장을 통하여 범용 배터리 표준을 제안하고 나섰다. 국내 모바일 폰 업계의 설명에 따르면, 모바일 폰은 기본 배터리와 안정성 실험등을 아주 다양하게 실시하여 폰과 배터리가 하나의 묵음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중국의 저가의 배터리가 ‘범용’의 탈을 쓰고 폰과 별도로 출시될 경우,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가 그 책임을 물을 길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미 중국은 자국에서 범용 배터리 표준을 추진하였으나, 세계무역기구(WTO) 관련 규정으로 이것이 물거품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ITU-T와 같이 국제 표준에서 개발할 경우, WTO에서 자유롭게 범용 배터리를 시장에 확산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회의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강력한 반대로 신규 표준 항목에서 이 안건은 통과되지 않았으나, 중국은 다음 회의에 또다시 이 이슈를 e-waste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들고 나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L.1000개정(범용충전단자) 문제나, 범용 배터리 표준 문제나 모두 국내 산업체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 관련 이슈에 대한 국가적 정책 방향과 산업체 이익이 모두 고려된 대응방안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