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TV리모컨도 지그비로

지그비 얼라이언스는 350개가 넘는, 그것도 미국(40%), 유럽(30%), 아시아(30%)에 골고루 분포한 회원사를 가진 그야말로 범세계적인 표준단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IEEE802.15.4 PHY/MAC 기반의 무선 센서 및 제어 네트워크 표준의 제정, 그 표준 기술을 사용하는 제품의 인증, 및 표준 기술의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단체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헬스케어, 스마트그리드, 홈 그리고 빌딩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의 응용을 다루면서 모니터링과 제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망한 표준 단체가 되었다.

2008년 RF4CE(Radio Frequency for Consumer Electronics) 컨소시움(삼성, 소니, 필립스, 파나소닉이 리모컨 표준화를 위해 공동으로 설립)을 통합하면서, 가전 제품 리모트 컨트롤러, 스마트 TV를 위한 사용자 입력 장치 그리고 TV와 3D 안경의 동기화에까지 그 영역을 분야를 끊임없이 넓혀 오고 있다.

ZigBee RF4CE의 ZRC(ZigBee Remote Controller) 기능을 사용하면, 기존 IR(Infra Rad)이 갖는 여러 가지 제약(시야각, 낮은 데이터 신뢰성, 광간섭 등)들을 지그비 무선 통신의 이점을 활용하여 극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양방향 통신을 구현하여 TV의 기능 정보 또는 응용서비스 정보를 리모컨에 전달하면, 이에 맞추어 리모컨의 기능을 적응하도록 할 수도 있어 사용자에게 스마트한 인터페이스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스마트 TV의 등장으로 TV 인터페이스가 단순한 리모컨을 뛰어 넘어, 터치 스크린 또는 공간 센싱 등의 다양하고도 고속 양방향 통신을 요구하는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는 추세에 대응하여, RF4CE 그룹은 ZID(ZigBee Interface Device) 스펙을 이미 완성하고 2010년 11월부터 인증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소니는 이 기능을 자사의 구글 TV에 장착하여 CES2011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또한 RF4CE 그룹에서는 3D TV의 대중화와 더불어 기존 IR 방식의 3D 안경의 단점을 극복하는 Z3G(ZigBee 3D Glasses) 스펙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능동형 3D의 안경의 경우, TV의 좌/우 프레임에 맞추어 안경의 좌우 셔터를 정확히 동작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 기존 IR 방식은 TV의 좌/우 프레임 동기 신호를 지속적으로 3D 안경으로 보내어 안경 셔터를 동작시켰다. 하지만 IR 방식의 단점은, 다른 광원에 의한 간섭이 있었고, 시야각 때문에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리면 동기 신호가 끊어지고, 지속적으로 동기 신호를 받고 하기 때문에, 1회 충전 동작 시간이 짧다는 단점이 있었다. RF4CE 그룹에서 제정하고 있는 Z3G 스펙의 개발 목표는 지그비 무선 통신을 활용하여 광원에 의한 간섭, 시야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동기 신호를 1초에 한번 정도만 보내도 TV의 좌/우 프레임과 안경 셔터가 동기가 맞도록 하여, 3D 안경의 1회 충전 사용 시간을 최대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늘리는 것이다.

이미 몇몇 가전사와 RF4CE 솔루션 제공 회사들이 Z3G 3D 안경의 선행 개발을 시작했고 빠르면 올해 안에 스펙이 완료됨과 동시에 시장에 선보이게 될 예정이다. Z3D 인증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다른 제조자가 만든 TV와 안경의 서로 호환되게 되면, 소비자는 자기가 원하는 안경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며, 시장 규모의 확대와 안경 업체간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3D 안경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어 3D TV의 대중화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이 지그비 얼라이언스는 그 표준화 분야를 지속적으로 넓혀 왔고, 이로 인해 관심을 가지고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여 표준화에 참여하는 회사들도 꾸준히 증가해왔으며, 이것이 얼라이언스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부작용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위협

지그비 얼라이언스 내에는 그 응용 분야에 따라 홈 자동화를 다루는 ZHA(ZigBee Home Automation), 헬스케어를 다루는 ZHC(ZigBee Health Care), 조명 관리에 특화된 ZSL(ZigBee Smart Light), 빌딩 자동화를 다루는CBA(Commercial Building Automation),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 관련된 ZSE(ZigBee Smart Energy) 그리고 GWG(Gateway WG), LPR(Low Power Router), Batteryless, RF4CE 등 10개가 넘는 워킹 그룹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겉보기에는 상호 아무런 갈등 없이 각각의 응용분야에 집중해서 스펙(여기서의 스펙은 코어 스펙이 아닌 프로파일의 개념)을 개발하고 있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대부분의 워킹 그룹은 얼라이언스 내에 있는 회원사들의 필요에 따라 공통의 관심을 갖는 회원사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RF4CE와 같이 이미 얼라이언스 밖에서 IEEE802.15.4 표준기술을 활용한 응용 표준을 제정 중이거나 또는 제정하려는 그룹을 흡수한 것도 있다. 흡수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흡수한 이후에 얼라이언스의 전체 방향성 및 기존 워킹 그룹과의 조화에는 그다지 힘을 쏟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지그비 얼라이언스의 기본 정책은 네트워크 레벨(IEEE802.15.4 PHY/MAC + Network Layer: ZigBee Core Stack)까지의 호환성 확보를 추구하나 그 이상, 즉 응용(혹은 프로파일) 레벨에서의 호환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로 유사한 응용임에도 서로 다른 워킹 그룹에서 프로파일을 제정할 경우, 서로 상이한, 호환성이 없는 프로파일을 만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ZHA와 CBA의 경우, 홈과 빌딩이라는 각각의 인프라는 다르겠지만, 실제 사용되는 제품의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만약, 이 두 프로파일에 호환성이 없다면 동일한 지그비 로고를 붙이더라도 제조업체가 2개의 프로파일을 모두 제품에 구현하지 않는 이상, 상호 호환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ZHA의 경우, CBA뿐만 아니라 RF4CE(가전 제품 제어), ZSL(조명 제어)과도 서로 응용 분야가 겹치고 있어, 결과적으로 같은 지그비 프로파일이지만 호환성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시장에서 상호 경쟁관계에 놓일 것으로 전망되기까지도 한다. 초기에는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고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소통 채널이 RF4CE와 ZHA그룹간의 존재했지만, 그나마도 스펙 개발 일정에 쫓기어 유명무실해진 상태이다.

이와 같은 그룹간의 협력의 부재는 ZSE와 ZHA사이에서도 발견된다. ZSE의 경우, 전력 유틸리티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고 주로 미터링 정보의 수집 및 과금 정보 전달에 집중하고 있다. ZSE 멤버가 ZHA에서 참여하지 않고 있고, ZHA 멤버는 ZSE에서 참여하고 있지 않다. 이미 시장에서는 ZSE와 ZHA의 연동을 중요한 요구사항으로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독자 행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협력의 부재는 대외 경쟁 표준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타난다. ZSE 그룹은 Wi-Fi, Homeplug라는 표준단체와 SEP(Smart Energy Profile) 2.0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문제는 Wi-Fi나 Homeplug의 기술 위에, 이미 개발된 IP기반의 가전 제품 제어 프로토콜 (예를 들면 UPnP)를 사용하면, 손쉽게 ZHA의 응용분야를 차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ZHA가 시장에서 설자리를 잃게 되면서, ZSE마저 그 응용 시장을 위협받게 될 수가 있다. (이미 Wi-Fi와 ZigBee는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상호 경쟁 관계에 있음)

결과적으로 이러한 얼라이언스 내의 워킹 그룹간 부조화는 시장의 세분화를 가져 오게 되어, 전체적인 시장의 크기를 줄이게 되며, 또 지그비 전체적인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모래를 단단한 바위로 

위에 말한 잠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얼라이언스가 적극적인 조정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얼라이언스가 어떻게든 보다 많은 업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포용 위주의 정책을 견지했다면, 지금부터는 회원사간, 그룹간의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인정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가는 작업을 해나가는 가운데, 각 워킹 그룹간의 조화 또는 보다 높은 레벨의 호환성을 달성해 나가는 적극적인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백만대 시장의 100%를 차지하는 것보다는 수십억만대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90%를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경쟁을 이기고 스마트 그리드, 홈 자동화, 헬스 케어라는 어마어마한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쉽게 흩어지는 모래가 아니라 단단한 바위와 같은 얼라이언스가 되도록 융합로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제주 스마트 그리드 실증 단지 등 스마트 그리드 관련 핵심 기술 확보를 활발히 추진 중임에도, 의외로 ZigBee 내에서의 기고 활동은 부족하다. 스마트 그리드라는 미래 큰 시장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관련 제조업체에서도 TTA WPAN 프로젝트그룹 활동 등을 통해 국내 의견을 조율하고 지그비 얼라이언스 대응 활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