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TF(Internet Research Task Force)는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에서 표준화하기 이전에 중요한 기술 사항들에 대해 사전 연구를 하는 그룹이다. 이중 RRG(Routing Research Group)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인터넷 라우팅 방법을 대체할 새로운 라우팅 기술을 찾는 임무를 띄고 2007년 초에 결성이 되었다.

현재 라우팅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BGP(Border Gateway Protocol) 라우터의 라우팅 테이블의 폭발이다. 백본 망에서 동작하는 BGP 라우터가 관리해야 할 네트워크 주소(network prefix)의 수가 지난 수년가 지속적으로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로 각 사용자 망이 복수개의 인터넷 사업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에게서 서비스를 받는 이른바 복수 가입(multi-homing)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원래 각 사용자 망이 한 인터넷 사업자에게만 가입하여, 할당 받은 주소가 백본에서 쉽게 압축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더 다양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사용자들이 복수개의 인터넷 사업자와 계약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으며, 안정된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서 이런 복수 가입은 오히려 권장되는 운용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한 사용자망이 서로 다른 사업자로부터 서로 다른 주소 영역의 주소군을 받아 사용하면, 백본 망에서의 라우팅에서 효과적인 압축이 큰 지장을 받게 된다. 사용자 주소가 효과적으로 압축되지 않고, 사용자 망 안의 개개의 호스트 및 노드의 주소가 백본 망에서까지 교환되게 되면 백본 BGP 라우터의 라우팅 테이블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백본 라우팅 테이블 폭발이라는 결과적 현상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은 인터넷의 IP 주소가 노드/호스트의 이름(name), 곧 개체식별자(identifier: ID)의 기능과 주소(address), 곧 위치표시자(locator: LOC))의 두 기능을 함께 가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위치 정보가 바뀌더라도 개체식별자 정보가 바뀌지 않는다면, 통신 기본 동작을 개체식별자 위주로 함으로써 주소 관리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곧, ID와 LOC의 분리가 근본 해결책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ID/LOC 분리는 또한 인터넷 문제의 다른 큰 한 꼭지인 신속 이동성(fast mobility)를 보장하기 위한 필요 조치로도 인정되고 있다.

RRG는 이렇게 ID/LOC 분리를 기본 기조로 하면서 복수가입(multi-homing), 신속 이동성(fast mobility) 및 트래픽 제어(traffic engineering)을 가능하게 하는 한층 더 큰 대규모 인터넷으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 줄 새 라우팅 기술을 찾고자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현재 RRG는 2010년 3월 IETF 77차 회의까지 새로운 라우팅 방법의 제안을 내도록 시한 지침을 받고 있다. 따라서 2009년 12월 24일까지 모든 제안서 마감을 하고, 몇 달의 토론을 거친 뒤 최종 RRG 권고안을 제출할 일정에 있다.

RRG의 의장은 RSVP(Reservation Protocol) 개발자로 유명한 UCLA의 Lixia Zhang 교수와 BGP4의 주요 개발자로 큰 명성을 갖고 있는 Tony Li가 맡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Lixia Zhang은 가상 압축(virtual aggregation)등 점진적인 방법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반면, Tony Li는 인터넷 기본 구조를 변경하더라도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치유 방법을 선호하는 대립된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안된 안 중에 가장 큰 주목과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LISP(Locator/ID Separation Protocol)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사용자 망 안에서는 사업자 독립적(PI: Provider Independent) 주소를 ID로 사용하며 또 그에 근거해 라우팅을 하고, 백본에서는 사업자 압축가능(PA: Provider Aggregatable) 주소로 변환해서 라우팅을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사용자 망은 복수가입 및 사업자 변경시에도 주소를 바꿀 필요가 없으며, 동시에 백본에서는 효과적인 주소(곧 루트) 압축의 효과를 볼 수 있다. LISP 특징 중의 하나는 ID/LOC 변환 기능을 백본 진입 초입에 있는 ITR(Ingress Tunnel Router)와 백본 출구에 있는 ETR(Egress Tunnel Router)에 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LISP에 의하면 현재의 사용자 호스트/노드, 사용자 망의 구내 라우터 및 글로벌 DNS 동작에 전혀 아무런 변경이 필요하지 않으며, 다만 사업자가 관리하는 백본 라우터만 변경하면 된다는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다른 한 방향은 Lixia Zhang 자신이 주장하는 이른바 가상 압축(virtual aggregation) 방법이다. 이 방법은 현재 인터넷 장비의 변경을 최소로 하는 한편 새로운 장비의 추가가 전혀 필요없이 수정적인 압축 기술의 도입만을 제안하는 가장 지각 변동의 소지가 적은 방법으로 주장되고 있다.

또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RANGER라고 일컫는 방법인데, 대개 사용자 망은 개별(private) IPv4를 사용하고, 백본 라우팅(곧, 이른바 도메인 간 라우팅: Inter-domain routing)에서는 공중 IPv6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사용자 망은 사업자가 바뀌더라고 고유의 IPv4 주소군은 변경없이 그대로 사용하면 되고, PA IPv6 주소만 사업자로부터 다시 배정 받거나, 또는 복수 사업자로부터 중복으로 받는 것이다. 패킷이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가운데 여러 개별 사용자 망을 지나가게 되겠는데, 이럴 때마다 해당 구역의 IPv4 주소로 변화/재변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 기술자는 지구 좌표를 이용한 이른바 지좌표 라우팅(geographical routing)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기존의 명성있는 기술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최근에는 칭화대의 대학원생 하나가 구조적 변환(hierarchical mapping) 시스템을 제안하였는데 꽤 많은 호응을 받는 편이다. 그 밖에도 여러개 안들이 제안되고 있는데, 모든 정보는 아래 사이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http://trac.tools.ietf.org/group/irtf/trac/wiki/RoutingResearchGroup

전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수십년 동안의 망 설계, 운영의 경험에도 불고하고 아직도 RRG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기술자들이 아직 정확한 이름 및 주소(Naming & Addressing) 개념에 대해서 여전히 많이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1978년에 발표된 John Soch의 IEN19(Internet Engineering Note #19)와 1978년 논문 및 RFC1498(1993)에서 설파한 Jerome H. Saltzer의 Naming & Addressing 개념이 가장 권위있는 개념으로 되어 있으나, 기술자들 사이에서의 이해 부족, 혼선이 아직도 혼존하고 있다. 특히 지난 수년간 위 두 문서에서 정의한 교과서적 Name, Address라는 용어 대신에 ID, Locator라는 용어를 사뭇 즉흥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개념의 혼동에 더욱 부채질을 한 것이 되었다.

앞으로 몇 달 사이에 어떤 선택 과정을 통해 어떤 구체적인 안이 새로운 인터넷 라우팅 방법으로 제안될 지 알 수 없으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어느 것도 미래인터넷 등에서 추구하는 근본적 치유책이 아니라 현재의 인터넷 구조적 취약점을 그대로 안은 채 점진적 치유책이 선택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근본적이고 과학적인 이름/주소 구조(Naming & Addressing Architecture)에 의한 근본적인 라우팅 해결책 강구는 미래인터넷 그룹의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여기에 미래인터넷 연구자들의 귀중한 연구 기회가 있다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