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Wave 대역이 열리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모험과 사랑을 그린, 1992년 Ron Howard 감독의 작품, “Far and Away”라는 영화를 보면, 그 당시 광활하게 펼쳐진 신천지에 먼저 깃발을 꽂는 사람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되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땅에 남보다 먼저 깃발을 꽂기 위해, 몇날 며칠을 말을 타고 달리며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서는 땅이 가장 귀중한 자원이었다면, 현대 무선 통신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주파수 대역(spectrum)이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그만큼 별다른 노력이 없이도, 더 많은 데이터를 보낼 수 있고, 또 이것을 여러 개의 채널로 나누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지기 때문이다. 금년 5월, 유럽 연합이 60GHz대역(57~66GHz)을, Wi-Fi 대역(2.4, 5GHz)과 동일하게, 비허가 대역으로 설정하는, 60GHz 공동 표준안을 공시하였다. 이로써, 60GHz 대역, 혹은 (그 파장길이에서 유래한) mmWave 대역은 명실공히, 전세계적으로, (송출 전력 제한 등의 몇몇 규제치만 만족하면,) 별도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9GHz라는 넓은 주파수 대역이, 마치 서부 개척시대에 광활한 대륙처럼, 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Multi Gbps 초고속 통신: 새로운 무선 응용의 가능성

기존 Wi-Fi와 비교하여 mmWave 대역 통신의 가장 큰 특징으로 초고속, 근거리 지향성 통신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먼저 초고속이라 함은 9GHz의 넓은 대역폭을 이용하여, 기존 Wi-Fi에서 불가능했던, Multi Gbps 통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Wi-Fi의 최신 802.11n 기술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전송속도가 수백 Mbps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초고속 전송 속도는 새로운 응용의 지평을 열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WirelessHD 컨소시엄이 주목한 고화질 영상의 무압축 전송 응용 분야이다. 얇고 아름다운 벽걸이 TV 밑에 주렁주렁 달린 AV 케이블들은 미관상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TV의 슬림화로 기존의 AV 커넥터 단자들은 점점 처치 곤란할 지경에 이르렀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4년 전부터, 메이저 TV 업체들은 고화질 동영상을 무선으로 전송하는 수단을 고심해 왔다.

하지만, 예를 들어, 수평 1920, 수직 1080 해상도에, 24 비트 퍼 칼라, 60 프레임 퍼 세컨드의 Full HD의 고화질 동영상을 전송하기 위해서는 순전히 데이터만 3Gbps라는 전송속도가 필요했다. 기존 Wi-Fi 솔루션을 사용했을 때, 비디오 데이터를 약 20:1로 압축해서 전송하는 것이 불가피했는데, 이러한 영상의 압축은 압축 자체로 인하여 detail한 이미지의 손실뿐만 아니라, 압축/압축해제 프로세스에 의한 영상 지연, 또 전송 시 발생한 비트 오류가 압축을 푸는 과정에서 인접한 비디오 프레임으로 확산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한 LG전자, 삼성전자, 파나소닉, 소니, 도시바, 필립스 등의 대형 TV 제조업체들은 mmWave 대역을 이용한 Full HD 무압축 전송의 가능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업체 표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07년 WirelessHD 컨소시엄을 발족하였고, 2008년 1080p Full HD 동영상을 무압축으로 전송하는 1.0 spec을 완성하는데 이르게 되었고, 2009년에는 CES에서 몇몇 업체가 WirelessHD기술을 응용한 무선 TV, Laptop, Dongle 제품을 선보이게까지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mmWave 통신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Intel, Broadcom, Atheros, Marvell 등의 전통적인 Wi-Fi 챔피언들도 2009년, WGA(Wireless Gigabit Alliance: WiGig Alliance)를 발족하고 본격적으로 PC와 핸드폰 응용을 타겟으로 하는 별개의 mmWave 통신 표준 스펙 개발에 들어가게 되었다. WGA의 Killer Application은 뭐니뭐니해도 PC와 그 주변 기기들 (HDD, 프린터, 핸드폰 등) 간의 유선 데이터 통신 케이블을 없애는 것이다. 실제로, 핸드폰을 PC와 연결할 때마다, 연결 케이블을 찾기 위해, 서랍을 뒤지는 것은 소비자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머지않아, 모든 PC 주변기기들을 무선으로, 그것도 Gbps의 속도로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근거리 지향성 통신: 약점인가 강점인가?

mmWave 대역의 또 다른 특징은 근거리 지향성 통신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중에서의 전송 손실은 전파 거리 제곱과 중심 주파수 제곱에 비례한다. 즉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60GHz (mmWave) 대역의 신호는, 5GHz 대역 (Wi-Fi)의 신호 대비, 약 144배나 더 감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방향으로 전파를 방출하고도 약 30meter의 도달거리를 갖는 Wi-Fi와는 달리, 모든 전송 전력를 타겟 디바이스를 향해 모아 쏘아야 하고 (빔 형성), 그나마 도달거리도 10meter 이내로 제한된다. (이 때문에 IEEE에서는 mmWave 기술을 WPAN, Wireless Personal Area Network기술로 분류하고, 반면 5GHz는 WLAN, Wireless Local Area Network기술로 분류한다.) 이것이 mmWave 대역 통신의 약점이자 또한 장점이기도 하다.

장점이 되는 이유는 첫째, 간섭이 적다는 것이다. 향후, 소비자 가정의 모든 방마다 무선 TV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Wi-Fi 기술을 사용하는 경우는, 방과 방 사이에도 간섭이 생길 수 있고 그 도달범위 때문에 옆집과도 간섭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mmWave통신은, 도달범위가 10미터 이내인데다가, 타겟 디바이스를 지향해서 신호를 쏘기 때문에 간섭의 여지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둘째, 꼭 필요한 타켓 디바이스를 향해서만 빔을 형성하여, 전력을 모아서 전달하기 때문에, 전범위로 전력을 방사하는 Wi-Fi 대비, 상대적으로 전송 에너지 효율(J/bit)이 높다. 셋째, 서로의 빔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같은 방 안에서, 동일한 주파수 채널에서, 동시에, 데이터를 전송해도, 서로 간섭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장점들 때문에, Wi-Fi Alliance 회원사들조차도, Wi-Fi next 기술로 mmWave 통신 기술을 손꼽고 있고, WGA의 탄생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그 산출물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표준화 동향: WirelessHD Consortium vs. WiGig Alliance

이러한 mmWave의 주된 응용 분야는 전술한 바, HDMI와 같은 고속 Digital AV 케이블의 대체, USB와 같은 고속 데이터 케이블의 대체뿐만 아니라, Gigabit 액세스 포인트, 차량 간 고속 통신, 모바일 기기간 데이터 교환, 회의실에서 무선 프로젝터 연결 등 무궁무진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이러한 응용 시장을 차지하느냐는 것이다. 가장 빨리 시장을 점유해가고 있는 표준은 누가 뭐래도 WirelessHD이다. 대형 TV 제조업체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HDMI 케이블을 대체하는 1.0 spec을 이미 2008년 초에 발표하였고, 그 후, 약 1년에 걸쳐, 엄정한 WirelessHD 인증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WirelessHD 인증 기기간에 높은 호환성이 보장되도록 주도 면밀한 준비를 갖추었다.

금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관련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며,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내부적으로 1.0 next version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next version이 단순히 기존 고화질 동영상 무압축 전송 기능의 업그레이드일지 아니면 보다 많은 응용분야를 포함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마 금년 내에 그 next version에 대한 발표가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WirelessHD에 비하면, 후발 주자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표준단체가 있다. 앞서 설명한 WGA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설명한 무선 칩 업체들 외에도 MS, Dell과 같은 PC 업체, LG전자, 삼성전자, 노키아와 같은 메이저 휴대폰 업체들이 포진해 있고, PC, 모발일 응용에 대응하는 1.0 spec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technical spec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생의 경쟁을 바라며

지금까지의 몇몇 표준 분야에서는, 서로 비슷한 표준 기술들이 경쟁하는 바람에, 시장 형성이 지연되고, 참여 업체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도한 프로모션 비용들을 지출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어느 한 표준이 레이스에서 탈락하게 되면, 해당기술을 채택한 제품과 생산라인을 철수해야 하는 등의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최종 소비자도 호환되는 제품을 제때 구매하지 못해, 그나마 구매한 제품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등의 피해를 받아 왔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mmWave 대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과연, 상생의 경쟁은 불가능한 것일까? 다행인 것은, 일단 표면적으로라도, WirelessHD와 WGA, 이 양대 mmWave 표준 단체들이, 상호 선의의 경쟁을 하는 가운데, 각자의 응용 분야에 맞는 최적의 표준 기술을 개발해 갈 것과, 궁극적으로는 시장에서 상호 공존해 갈 것을 목표로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시스템이 동일한 주파수 채널에 공존하기 위해서, 동일한 채널 플랜을 사용하고, 서로 다른 디폴트 채널을 채택하는 방법에서부터, 에너지 감지, Preamble 감지, 공존 신호 송출, 그리고 공통 스케줄링을 통한 채널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을 함께 논의해 갈 수 있다.

새롭게 열린 비허가 대역인 mmWave 대역이 낭비적인 경쟁과 다툼 장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이해당사자들이 상호 협력하는 가운데, 초고속 근거리 통신의 효용을 많은 소비자들이 보다 빠른 시일 내에 누리게 되기를, 관련 무선 표준에 종사하는 엔지니어이자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란다.